몇 주 전까지 루마니아 이사카 마을과 우크라이나 오르보카 마을 사이 페리 교차점은 주로 다뉴브 강을 건너 화물을 운반하는 트럭이 오고가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탈출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명줄이 되고 있습니다. 매일 약 2천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합니다.
교과서를 챙겨 왔지만, 언제 어디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8세 야리카(가명)와 10세 알렉시(가명)의 학교는 일주일 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집을 떠나며 교과서를 챙겨 왔지만, 언제 어디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당장 오늘 밤 어디에서 밤을 보낼지, 또 며칠을 보낼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진작가가 UNO 카드를 주고 사진을 몇 장 찍기 시작하자 몇 분 만에 웃고 즐기는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내 엄마는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아이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탈출한 가족들이 페리에서 내리면 자원봉사자들이 큰 주황색 텐트로 안내합니다. 다음 단계에 대한 안내를 받고 뜨거운 음료와 간식 그리고 담요를 받습니다. 담요와 히터가 있는 임시 텐트에서 서류처리를 기다립니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선물하면,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지고 고단한 과정을 잠시 잊게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고향이고 남편들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15살 케시(가명)와 12살 야나(가명)는 엄마 이리나(가명)와 함께 텐트에 도착했습니다.
5살 된 이브리나(가명)와 남동생 그리고 엄마 베로니카(가명)도 포격을 피해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사이렌이 하루에 5번 이상 울렸어요. 그래서 떠났습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먹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전쟁이 시작된 후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처음엔 온라인 수업을 몇 번 받았지만, 지금은 중단되었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로니카가 말합니다.
이리나는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고향이고 남편들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남편과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긴 여정에 지친 가족들은 전날 오전 11시에 출발해 밤새 달려 오를로프카 페리 항구에 도착했다고 말합니다.
몹시 추운 요즘, 이곳에 도착하는 많은 가족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하는데 한 가족이 눈에 띕니다. 담요를 겹겹이 덮고 있는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다이애나(가명)를 만났습니다.
차 없이 탈출하는 가족들은 유모차를 싣지 못해 모든 소지품과 아기를 안거나 업고 다녀야 합니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아기는 훌쩍거리고 다이애나는 아기를 꼭 안고 달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다른 자녀들에게는 장난감과 간식을 가져다줍니다.
다이애나의 가족은 그래도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 몹시 추운 요즘, 이곳에 도착하는 많은 가족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며칠 밤 또는 몇 달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탈리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하르키우는 분쟁이 시작된 후 야간 공습과 포격으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전쟁 첫날 딸아이가 겁에 질려 하루 종일 울었어요.”
나탈리아(가명)는 9살 된 딸 소피아(가명), 어머니, 강아지와 함께 안전하게 국경을 넘었습니다.
폭탄을 피하기 위해 아파트 복도에 창문이 없는 곳에 임시 대피소를 만들었습니다. 너무 위험해져서 하르키우를 떠나야겠다고 결정하기 전까지 일주일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점점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임시 대피소는 공습에는 우리를 보호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탈리아는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왔지만, 전쟁이 끝나면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경 가까이 머물고 싶어합니다. 소피아의 학교는 전쟁 첫날 문을 닫았고, 일주일 후 폭격을 당했습니다. “소피아는 정말 학교생활을 그리워해요, 언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지, 언제 놀이터에 갈 수 있는지 묻곤 하죠.”
현재 나탈리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쉘터들에서 강아지를 받아주지 않아, 3시간째 머물만한 장소를 찾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제 둘째나 다름이 없어요, 강아지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자원봉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나탈리아 가족이 머물 숙소를 구했다고 전해 인터뷰가 중단되었습니다. 가방을 들고 버스로 향하는 나탈리아의 가족의 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버지가 가족을 여기까지 태워다 주고 군대로 돌아가셨어요"
카타리나(가명)는 폴란드 첼름 기차역에서 인근 도시 루블린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타리나는 동생과 엄마와 함께 아버지와 작별 사를 한 후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키이우는 매우 무서운 상황입니다. 매일 밤, 잘 때마다 알람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어요. 경보를 듣고 안전한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지금 이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게 매우 끔찍하게 느껴져요. 수많은 학교와 병원이 공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오늘, 아버지가 가족을 여기까지 태워다 주고 군대로 돌아가셨어요. 여기에 온건 좋은데 아빠가 아직 우크라이나에 계세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가 없어요. 언제 아빠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5살 된 동생은 언제 아빠를 다시 볼 수 있는지, 언제 집에 갈 수 있는지 종종 묻고,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요."
"여기에서 우리를 돕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봤고, 전 세계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전쟁이 멈췄으면 좋겠어요."